쇼미더머니 4, 이제 진짜 마지막. 걍 조금 이상한 얘기

또 쇼미더머니다. 그래, 쉬바, 나도 이 쇼에 대해 더 할 말이 남아 있을 줄 몰랐다. 모르겄다. 언제부턴가 이 쇼의 예의없음과 염치없음과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나도 모르게 즐기게 됐나 보다. 궁극의 마조히즘이다. 멋지고 날선 혀들이 도처에 판치고 있는데 또 내 주제에 주절주절 뭘 더 보태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뭐 어때. 식스팩 있는 넘만 수영복 입으란 법도 없는데. 날이 덥다. 나도 웃장 좀 까야겠다. 어느덧 시즌 4도 마지막 한 회만을 남겨두게 됐다. 사실 요번 포스팅은 저번 주에 씌어질 예정이었다. 뭐, 이왕 지각한 김에 그간의 밀린 잡상들을 한 방에 방출해볼란다. 7회부터 시작해볼까. 늘 그렇듯 엠넷은 돈광판 경연 결과 발표를 그 다음주로 넘기고 속내 뻔한 낚싯줄을 던졌다. 로꼬의 환한 미소야말로 탈락의 전조임을 직감했지만, 혹시나 하는 어리석은 의심에 한 주를 더 기다려보았다. 부푼 희망을 하늘로 두둥실 올려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난자당한 기대가 우수수 땅에 떨어진다는 걸 나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역시나였다. 기대⇒배신이라는 낚시 패턴이 한치의 오차없이 반복되다 보니 도리어 제작진의 미끼에 입맛을 잃어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릴보이가 올라가길 바랐던 것처럼 보이네. 부정하진 않겠지만, 실망스럽지도 않다.

아무래도 지난 7회 최고의 화제는 디스랩 팀배틀이었던 만큼, 요 얘기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디스라는 형식으로 팀단위 랩배틀을 펼친다는 것이 미션의 골자였다. 흠, 글쎄. 일단, 디스가 힙합 경연의 한 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좀 의아스럽다. 대충 싸잡아 얘기하자면, 디스란 구체적인 상대에 대한 격앙된 감정이나 해묵은 원한을 랩이라는 장르를 차용하여 언어적으로 해소하는 행위쯤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가사엔 흔히 상대에 대한 우회/노골적인 비난, 야유, 조롱, 모욕 등이 따르게 마련이다(재작년 저주받은 돌림노래처럼 끝없이 돌고 돌던 디스전을 떠올려보라). 상대에 대한 격앙된 감정을 극적으로 연출된 공격을 통해 해소한다는 점에서 중세 이후 유럽에 성행했던 결투(duel)를 떠올리게 한다. 신중히 고른 비트에 맞춰 계산된 라임을 겨누는 래퍼나, 입회인의 중재 아래 곧고 가는 칼로 민첩하게 명치를 노리는 검객이나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군가는 혀로 싸우고 누군가는 칼로 겨룬다는 것 정도랄까.

디스: 비트의 입회 아래 라임을 겨누다!
사진출처: http://chrishollisartist.goldenkipper.com/duel.html

그런데 쇼미더머니 4의 디스랩 배틀은 온전히 걍 디스라기엔 뭔가 멋쩍은 부분이 있다. 디스를 구성하는 기본조건인 “구체적인 상대에 대한 격앙된 감정이나 해묵은 원한”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센스와 개코의 공방에 열광했던 건 그들 사이에 쌓인 짜증과 원한의 역사 때문이다. 고개를 외로 꼬고 쏴붙이는 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구경꾼도 덩달아 무릎을 치고 고소해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이 쇼의 어떤 래퍼들은 디스랩 배틀에서 맞붙을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쇼에서 처음 안면을 튼, 입쇼(?) 전 서로의 랩 한 번 제대로 들어봤을 리 없는 사람들에게 칼을 쥐어주고 다짜고짜 서로를 찌를 것을 종용한다. 별 관심도 없던 입쇼 동기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별안간 내 저격의 표적이 된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야유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른바 인상디스이다. 걍 눈에 보이는 대로 상대를 대충 스캔하곤 냅다 걷어차는 거다. 그러니 작은 키나 독특한 머리 모양, 추레한 옷맵시가 만만한 콩떡이 된다. 인상디스의 함정에 뛰어들길 거절하는 래퍼들은 -- 릴보이처럼 -- 결국 개인저격 대신 광역도발을 선택한다. 이 후잡한 것들아, 나는 늬들보다 만배는 멋지다! 허공을 향해 폼나게 휘두르지만, 정작 칼끝이 겨누는 상대는 분명치 않다. 당연히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통쾌함도, 능글능글 급소를 찌르는 짜릿함도 전해질 리가 없다.

하지만 디스랩 배틀의 더 큰 문제는 바로 디스와 경연의 기괴한 이종교배에 있다. 결투에서 상대를 향한 감정이 증발되고 칼을 둘러싼 규칙만 남았을 경우, 이는 펜싱이 된다. 디스와 결투는 제법 짝이 맞는 반면, 펜싱과 디스랩 배틀은 당췌 아귀가 맞지 않는다. 전자갑옷을 입고 상대선수의 심장을 찌르는 나의 칼끝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 하지만 라임을 타고 상대 래퍼의 멘탈을 겨누는 나의 가사에는 분명 일말의 감정이 묻어 있다. 설령 그것이 쇼를 위해 억지로 자아낸 것이라 해도 말이다. 도당췌 상대방을 향해 어떠한 감정도 없이 조롱과 야유를 투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사와 의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착란적 전제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급기야 조롱과 야유에 섞여들 감정을 통제하고, 이로 인한 심리적 피해를 관리하기 위해 프로듀서들이 앞장서 디스를 매뉴얼화하기에 이른다. 이건 디스해도 되지만, 저건 디스해선 안 돼. 마치 신입 고문관에게 용의자의 정강이를 부러뜨리는 건 괜찮지만, 어금니를 뽑아선 안 된다고 당부하는 선배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인정하자. 디스건, 고문이건, 누군가는 아프게 돼 있다(그럼에도 통쾌한 디스는 가능하지만, 통쾌한 고문은 성립할 수 없다). 가리지 않고 난폭하게 물어뜯는 디스란 녀석을 사슬에 묶어 법전에 가둔 채 그 신랄한 몸짓만을 불러내려는 부산한 시도들은 예상대로 실패했다. 디스가 경연 위에 호기롭게 올라탔지만, 요란한 신음소리만 낳고 교미가 끝났다. 기대만큼 짜릿하지도, 장담한 만큼 덜 아프지도 않았다. 디스는 결투지만, 디스랩 배틀은 펜싱이 아니다.

이것은 디스랩 배틀이 아니다
사진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encing


다시 한번 묻겠다. 그래서 디스랩 배틀의 정체는 무엇인가? 디스인가, 경연인가? 디스라면 화끈하게 퍼붓고 장렬하게 전사하든가. 조건을 달고 눈치를 살피는 순간, 디스는 “간지”를 상실한다. 확실히 디스랩 배틀은 모냥 빠졌다. 경연이라고? 그렇담 모르는 누군가를 디스하는 능력을 측정하고 서열화하겠다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어야지. 도당췌 프로듀서들이 심사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애티튜드인가, 랩 실력인가? 전자라면 블랙넛을 향해 그렇게 엄숙한 얼굴로 꾸짖어선 안 되었으며, 후자라면 애초부터 디스라는 상황극 속에서 경멸과 모욕을 힘들게 연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디스는 랩 잘 하는 래퍼와 랩 못하는 래퍼를 가리는 최적의 방식이 못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굳이 디스극을 상연하기 원했고, 래퍼들은 기꺼이 혹은 마지못해 자기가 쓴 각본의 연기자가 되었다. 상의 없이 디스 상대가 바뀐 송민호의 분노는 꽤 실사에 가까워 보였지만, 왠지 데이트 전 날 노스페이스 잠바를 빨아버린 엄마를 향한 칭얼거림 같기도 했다. 블랙넛은 배역과 인격이 완벽하게 하나 된 열정적인 메소드 연기자를 방불케 했다. 그럼에도 어찌된 일인지 이 쇼에선 배역에 너무 충실해도 비난을 받고, 성실히 모욕하지 않아도 욕을 먹는다. 지금 와 다시 몇 번을 생각해도 디스랩 배틀이 무엇을 겨루는 시합이었는지 도시 알 수가 없다.

아니, 근데 디스랩 배틀이 시합이긴 했던가? 시합이라면 무슨 시합이었나? 권투였나, 프로레슬링이었나? 제작진 스스로도 디스랩 배틀의 장르를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한 채, 이해와 오해의 책임을 래퍼들에게 떠넘기고 카메라 뒤로 숨어버렸다. 결국 하나의 무대 안에 서로 다른 쇼들이 어지럽게 엉키고, 서로 다른 규칙들이 거세게 부딪혔다. 누군가는 권투 선수로 링에 오르고, 누군가는 프로레슬러가 되어 케이지에 들어섰다. 누군가는 글러브 낀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신중하게 조준하고, 누군가는 가시철사를 동여맨 몽둥이를 눈도 안 뜨고 마구 휘둘러댔다. 누군가는 래퍼와 싸웠고, 누군가는 관객과 싸웠다. 나는 왜 지금 이 철장 안에 있는가? 상대를 때려눕히기 위해서인가, 관객을 흥분시키기 위해서인가? 자메즈는 래퍼와 싸웠고, 블랙넛은 관객과 싸웠다. 블랙넛은 자신의 정부 -- 미세스 죽 -- 와 망설임 없이 무대에 함께 드러누웠으며, 투견장의 발정난 수캐처럼 아무데나 다리를 벌리고 부끄럼 없이 “짖어댔다.” 그리고 당연히 관객은 자신을 위해 짖어준 블랙넛을 선택했다.

요새 핫한 커플: 사진 상단 미세스 죽, 하단 미스터 넛
사진출처: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411342

잠깐! 오해는 말아주시길. 나의 지난 포스팅(선은 무력한 악이다)에서 보다시피, 나는 프로레슬링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프로레슬링을 변호하기 위해 기꺼이 이성을 멈출 각오가 되어 있다! 나는 극단의 왕국의 가장 충직한 백성 중 하나였으며, 블랙넛이 정말 엉덩이를 까고 송민호의 발에 오줌을 눴대도 나의 단련된 비위엔 기별도 안 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블랙넛이 여전히 탐탁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도 여전한 가사실수와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한 생뚱맞은 참회 때문이었을 것이다(내심 뻔뻔하게 버텨주길 바랐다만). 자신의 정부와 케이지까지 동행했다면, 그에게 무대 상석에서 좋은 구경 시켜줄 심산은 아니었을 텐데. 순간의 실수고, 지금은 후회한댄다(어쩐지 자신이 씹은 가사를 더 안타까워하는 모냥 같았지만). 어쨌거나 제작진은 블랙넛의 퍼포먼스 뒤에 래퍼들의 볼멘 항의, 프로듀서들의 준엄한 꾸짖음 그리고 블랙넛 본인의 참회(아닌 참회)를 죽 엮어 성곽처럼 긴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이 가석방으로 출소를 시킨다만, 감옥에 더 있어야 했던 사람이라는 듯. 헛웃음이 나온다. 누가 누굴 정죄하지? 사이퍼는 얼마나 정의롭고 아름다웠는가? 로마 황제의 변덕스런 자비심 같던 패자부활전은 추상처럼 공정했고? 이 냥반아, 너를 좀 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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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돈광판 경연이 시작됐다! 쇼 이름이 “쇼미더머니”인데, 이놈의 돈 구경을 하기까지 무려 7주가 걸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광판 무대에 딱 한 번 서보고 사라지는 팀 -- 박재범 & 로꼬 팀 -- 도 생겨났다. 오랜 시동을 마치고 이제 겨우 배가 항구를 떠난 것 같은데, 항해는 너무도 짧았다. 요행히 암초를 비켜간 다른 팀들에게도 잘해야 두 번의 기회가 남았을 뿐이다. 기분 탓인가. 시즌 1에 비해 돈광판 무대 횟수가 확연히 줄어든 느낌이다. 쇼미더머니의 시그너처인 돈광판 무대는 이제 요란한 힙합 연속극 뒤에 덧붙은 단출한 부록 같아 보인다. 프로듀서가 돈광판 무대에 서는 것도 단 한 번뿐이다. 시즌 1에선 프로듀서도 래퍼만큼이나 보여주고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푹신한 소파에 내내 기대 누웠다 이따금 본전을 지키러 무대에 끼어들 뿐이다. 말 그대로 끼어든다. 특히 어느 팀의 두 분은 래퍼가 차고 나오는 값비싼 액세서리와 다를 게 없다. 멋지게 번쩍거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첫 번째 탈락팀: 밑천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첫판에 쫓겨난 박재범 & 로꼬 & 릴보이
사진출처: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181266


처음에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란 주문은 블랙넛이 재미삼아 던진 작은 돌팔매였다. 하지만 이제 이 아홉 글자는 쇼미더머니 4를 관통하는 묵직한 모토가 되었다. 송민호를 제외한 어떤 래퍼도 감히 우승을 욕심 내지 않게 되었고, 송민호 자신조차 우승에 대한 욕심을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엔 송민호를 향해 던진 야유였지만, 돈광판 경연이 시작되면서 이는 관객을 향한 선동이 되었다. 송민호가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지와 관계없이, 송민호를 선택하는 순간 관객은 힙합도 뭣도 모르는 송민호 빠돌이/빠순이가 된다.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는 이제 관객에게까지 힙합에 대한 취향의 품격을 show & prove할 것을 종용한다. “이래도 넌 송민호 찍을 거니?” 송민호도 이제 포기한 듯 스스로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애써 자조해보지만, 자랑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물론 부당하다는 걸 잘 알지만, 그가 지고 갈 짐인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우승을 차지하겠지만, 송민호는 애초에 원했던 대중의 존경심까지 부상으로 얻어가진 못할 것이다. 시즌 3의 선배가 그러했듯이.

드디어,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송민호 vs. 블랙넛 대결이 펼쳐졌다. 이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숱한 억지와 눈물과 분노와 논란이 휩쓸고 갔는지 알기에 기대하지 않으려 애썼다. 실망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 래퍼 모두 인생이란 전쟁터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적 있는 병사의 분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둘의 후일담은 들을 만했다. 적어도 인크레더블처럼 오글거리진 않았다(그의 고백은 진짜처럼 들렸음에도 어쩐지 좀 민망했다). 송민호가 전방의 전선에 잠깐 몸을 담았다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한 성공한 청년이라면, 블랙넛은 아직도 폐허가 된 전쟁터를 홀로 헤매며 닥치는 대로 쏘고 찌르고 피 흘리고 절름거리는 낙오병 같아 보였다. 둘은 관객이 아닌 배심원을 설득하듯 이해와 인정을 탄원했고, 나는 송민호보단 블랙넛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송민호의 무대는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안전하고, 나쁘지 않았다(그나저나 태양은 노래를 참 잘하더만). 악덕 기획사 사장에게 잠시 꺾였던 희망,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 자신의 땀에 제값을 쳐주지 않는 대중, 무턱대고 꿈만을 좇았던 시절의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 등등, 그만의 얘기를 담담히 잘 전했다. 나는 당신들 생각처럼 나쁜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우승을 날로 먹기 위해 여기 온 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왜 자꾸 변명처럼 들리는 걸까. 더 나쁜 건, 굳이 송민호가 아니더라도 그와 같은 전선에 있었던 다른 아이돌 병사들도 할 법한 얘기처럼 들렸다는 점이다. 물론 거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항변하고 호소하려 할 때마다 진짜 송민호는 껍데기 속으로 더 깊게 숨어드는 느낌이다. 차라리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수군대는 얼굴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공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고, 증명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소년병 송민호 자신을 향해 읊조렸다면 어땠을까. 설령 진심이 아니더라도, 그 편이 더 멋졌을 것 같다.

지난 포스팅(힙합 맛 생쇼, 쇼미더머니 4)에서 나는 힙합 무식자의 전두엽을 쩡 하고 울리는 진짜다운 진짜를 호구처럼 기다리겠노라 했다. 힙합 무식자의 전두엽에 드디어 기다리던 기별이 왔다. 그것도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래퍼로부터. 블랙넛의 준결승 공연은 지금껏 지켜본 쇼미더머니 4 무대 중 가장 기억될 만했다(내가 좋아하는 제시가 나온 것도 좋았다. 룰루). 아, 그의 가사가 -- 시즌 4의 모든 래퍼들을 통틀어 -- 처음으로 똑똑히 들렸다! 자막과 무대를 바쁘게 오가지 않아도 누군가의 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힙합 무식자로서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이제 블랙넛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는 예감은 나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가사를 관통하는 정서는 깊은 외로움이었다. 생업에 바쁜 부모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던 자기 속의 어둠,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것 없던 자랑스럽지 못한 유년 시절, 그래서 더욱 랩에 매달렸던 자존심 세고 예민했던 소년 등등.

관심받기 원했던 한 소년: 이제 소원을 이루셨습니까?

사진출처: http://news.zum.com/articles/24457556?t=t?c=06

그중에서도 부모님의 호프집에서 서빙을 도우며 선의 없는 어른들에게 함부로 걷어차였던 유년의 기억들은 분명 블랙넛, 아니 김대웅만이 불러낼 수 있는 아픔처럼 들렸다. 그간의 기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생생했다. 송민호가 아닌 블랙넛의 고백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아마도 이 눈에 보일 듯 선명하고 날카로운 묘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길게 설명하는 대신, 몸부림치던 과거의 장면들을 스냅샷에 담아 던져주었다. 생각해보면 상처받은 과거의 스냅샷들은 송민호의 가사에도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그의 가사가 특별하게 들렸다면, 그건 블랙넛의 재능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쓰고 퍼뜨렸던 쓰레기들은 여전히 적어도 내게선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쇼 밖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나 몰라라 뒷짐 지고 먼 산만 보던 제작진의 기회주의도). 이제 원하던 대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 앞으론 어머님 말씀처럼 부디 그의 재능이 우리를 불쾌하게 하기보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길 바란다.

음.. 뭐 더 할 말이 있나? 결승은 이미 송민호 vs. 블랙넛에서 끝났다. 러닝타임을 30분이나 남기고 절름발이가 범인임이 탄로 났다! 이제 스포일러조차 의미 없는 마지막 번외편이 맥없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에 인크레더블이 베이식의 접시에 뼈만 남은 생선으로 올랐다면, 다음 주엔 베이식이 송민호의 접시에 푸짐한 갈비가 되어 놓일 예정이다. 베이식이 얼마나 유능한 래퍼였는지 알지 못하는 힙합 무식자로서 발견한 그의 유일한 미덕이란 노련함뿐이다. 게다가 그 미덕조차 항상 발휘되는 것 같지도 않다. 솔직히 시즌 4에서 기억나는 그의 무대는 릴보이와의 콜라보 미션뿐이다. 차라리 릴보이가 올라왔으면 어땠을까 본전 생각도 나고. 뭐, 끝까지 있는 힘껏 저항은 하겠지만, 그건 관객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show & prove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건투를 빈다만, 기대는 않으련다. 둘 중 어느 누구에게도.

힙합 맛 생쇼, 쇼미더머니 4. 걍 조금 이상한 얘기

시즌제 방송은 첫 회부터 정주행하지 않으면 걍 끝까지 안 보고 마는, 참으로 게으른 멘탈의 소유자이다. 이미 두세 정거장 앞서 간 버스를 헐레벌떡 뒤늦게 열심히 쫓아가 따라잡는 그런 근성을 발휘하게 해줄 그런 육감적인 프로를 만나기도 어지간해선 쉽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무한도전도 새 멤버 충원 이후로 띄엄띄엄 들여다보다 보니 이젠 영 뒤꽁무니 쫓아갈 맘이 안 선다. 그러다 언젠가 우연히 쇼미더머니 시즌 4 2회를 보게 됐다. 엠넷에서 지겹도록 재방을 틀어주지 않았다면 나 같은 게으른 시청자한텐 순서가 안 왔을 테지만. 쇼미더머니 시즌 1을 굉장히 재밌게 봤던 기억 덕분에, 그리고 시즌 1 우승자 로꼬가 어느새 팀장(달리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는 분)이 되어 크루를 거느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여 이제 주말 재방을 챙겨보는 정도가 됐다.


유튜브 추출 음원으로 개인소장 중인 쇼미더머니 시즌 1 공연 (1):
로꼬+45RPM의 “오래된 친구”

먼저 떠난 버스 따라잡기 귀찮은 것도 그렇고, 체육관 초간택 씬은 언제 봐도 영 거북스럽기도 하여 1회는 아직까지 안 봤다. 엔간한 조선 츠자들 궁궐 뜰 앞에 죄 모아다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놓고 왕실 식구들이 떼 지어 지나다니며 츠자들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괴한 세자빈 간택 퍼포먼스 -- “어차피 세자빈은 송민호!” -- 를 ‘즐기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시청자가 과연 나 혼자뿐일까. 그래도 슈퍼스타 K 예심에선 비록 천으로 된 얇은 장막일지언정 한 방에 한 명씩 들어가 심사자의 평가를 받지 않나(아님 아니라고 지적해주기). 래퍼라고 멘탈이 티타늄도 아니고, 아니, 아무리 멘탈이 티타늄이래도 래퍼는 왜 다른 오디션 지원자들처럼, 자신의 꿈이 저울질당하고 자신의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에 혼자 있을(혹은 혼자 있다는 환상을 누릴)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걸까. 그냥 그 큰 체육관 마룻바닥에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이 많은 지원자들을 저 위에서 잡아주는 부감 샷, 그 예고편의 한 장면을 위해 래퍼들의 존엄은 이렇게 가볍게 소비된다. 이 쇼의 일부가 되고 싶어 안달 난 인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 이 쇼가 앞으로 만들어낼 흥행의 스케일이 이리도 대단하다는 걸 꼭 시청자들에게 단단히 자랑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래퍼들이 꿈을 위해 자신의 존엄을 기꺼이 헐값에 지불하기로 동의했다 해도, 꿈과 쇼가 어지럽게 널린 도떼기시장의 풍경이 4년간 제법 익숙해졌다 해도 별론 건 별론 거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체육관 초간택은 이제 돈광판(상금이 찍히는 전광판)과 함께 쇼미더머니의 시그너처가 된 느낌이다.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입이 댓발이 나와 씨부렁대봤자 앞으로 절대 안 바뀔 거란 얘기다.

제작진에 대해서도 악마의 편집이니 뭐니 말들이 많은 줄로 안다. 근데 제작진의 과도한 개입은 비단 쇼미더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라, CJ 리얼리티 전반의 트렌드 같기도 하다.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지만, 리얼리티 프로의 특성상 드라마틱한 서사가 5분에 한 번꼴로 빵빵 터져주리라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텃밭을 걷는 강아지는 느닷없이 정글을 탐험하는 모험가가 되고, 한 여름에 목이 탔을 뿐인 남자는 야관문 차 한 잔에 졸지에 마님을 노리는 머슴이 된다. 하지만 제작진의 권능은 이제 부족한 서사를 편집으로 메우고, 멋모르는 등장인물에게 알아서 캐릭터를 하사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등장인물이 마술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기까지 한다! 어찌나 감쪽같은지 이따금 화면에 침투하는 유령인간의 손발이 놀랍긴커녕 거치적스러울 정도다. 급기야 가공된 현실에 불현듯 침입하는 진짜 현실이 도리어 불쾌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이렇듯 CJ 리얼리티는 사실들을 선택하고 과장하고 재배치함으로써 현실과 닮았지만 현실은 아닌 또 하나의 가상현실을 창조해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실들은 곳곳에 널려 있는데, 이 사실들이 헤쳐모이면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쇼미더머니를 ‘즐기지’ 못하고 ‘견디는’ 이유는 뭘까.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들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흔드는 제작진? 하지만 매끈하게 잘 가공된 현실이 진짜 현실보다 훨씬 유쾌할 수 있다는 걸 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불편한 건 시청자가 쇼를 즐기는 방식마저 지배하려 드는 제작진의 도를 넘은 욕심이다. 무슨 근건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우리가 스캔들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스캔들을 둘러싼 웅성거림으로 측정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사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이야기한다는 사실로 쇼의 성공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상관없다. 마치 연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이상하고 절박한 사람 같기도 하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블랙넛의 죽부인 퍼포먼스를 내보내지 않은 건 제작진이 통 크게 쓴 흔치 않은 선심이었다. “내가 원래 차에 뛰어들려다 간신히 참은 거라고!” 내심 죽부인 퍼포먼스를 안 보게 돼서 다행이긴 하다. 봤다면 나는 밤마다 내 겨드랑이 옆에 놓인 죽부인을 두 번 다시 전과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흐.

MSG로 눈꽃빙수를 만들고 있는 쇼미더머니 4 제작진 - 지친다, 지쳐
사진출처: http://blog.lacuisine.kr

그러다 판정번복이 터졌다. 들끓던 용암이 드디어 솟구쳐올랐다. 산이와 버벌진트의 어리석음을 비웃어 무엇하랴. 그들의 어리석음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제작진의 기회주의를 탓해야지. 이렇게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줄 몰랐다고 우긴다면 참 염치도 없다. 김건모의 가수생명이 아작날 뻔한, 그 악명 높은 “내가 좋아하는 김건모가 떨어져 슬프단 말야” 사건을 정녕 기억 못하시는가. 블랙넛은 산이와 버벌진트와 엠넷에게 멋지게 토악질해놓고, 자신이 쏟아낸 토사물 위에 주저없이 주저앉았다(아, 서출구는 얼마나 멋진 래퍼였던가). 이제 게임의 규칙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아니, 이제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게 됐다. 탈락과 통과 사이의 긴장감, 꿈의 전진과 좌절 사이의 절박함이 졸지에 몹시 하찮은 것이 됐다. 걍 쇼를 본 누군가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누군가는 악에 받혀, 누군가는 헛웃음으로, 누군가는 비아냥 속에 그렇게 요란하게 쇼에 대해 찧고 떠드는 소리만 중요해졌다. 제작진에게 이해나 공감은 더 이상 절실하지 않다. 그저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그 요란한 웅웅거림을 듣고 자신의 쇼가 존중받고 있다고 안도할 뿐이다.

이젠 제작진에게 서운한 마음마저 든다. 이들에게 쇼에 대한 시청자의 경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쇼를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심신에게 얼마나 고된 과업이 되었는지 생각해주지 않는다. 되려 쫄리면 뒤지시든가 쳐보면서 왜 자꾸 칭얼대냐 면박을 준다. 그러게.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 관성의 법칙? 돈광판 경연무대를 제대로 즐기려면 전사(pre-history)를 알아야 하니까? 나도 모르겠다. 시즌 1에서 내가 봤던 뭔가를 다시 보고 싶었던 걸까. 다사다난한 곡절을 등 뒤에 숨긴 상처 입은 들짐승 같던 일통, 실패한 아이돌 지망생에서 래퍼 중의 아이돌로 떠오른 맛깔스런 래핑의 로꼬, 무대 위 존재감도 실력이란 걸 보여준, 데뷔 후 처음으로 나를 반하게 만들었던 이효리, 그리고 자조와 자학이 자뻑과 자화자찬보다 더 통쾌할 수 있단 걸 알게 해준 45RPM까지. 그때도 물론 논란은 있었을 테고, 제작진은 야심에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즌 1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은 하나도 기억에 잡히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오직 일통의 거친 숨소리와 45RPM 공연 사이로 끼어들던 웃음소리뿐(아님 나의 몹쓸 기억력 덕분일지도).


유튜브 추출 음원으로 개인소장 중인 쇼미더머니 시즌 1 공연 (2): 일통+45RPM의 “One Night”


어쩌면 지금 난 쇼미더머니 4에 진짜 힙합이 나오길 기다리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소장한 힙합 앨범이라곤 Fugees 시디 두 개(그것도 순전히 로린 힐 때문에 산)뿐이고, 팔로알토라는 분도 요번에 처음 이름을 뵀다. 힙합 무식자래도 하등 이의가 없다. 허나 제 아무리 힙합 무지렁이래도 힙합이 있어야 할 자리에 힙합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안다. 지금 쇼미더머니 4는 바나나맛 우유 같다. 바나나맛 우유 속 바나나나, 쇼미더머니 4의 힙합이나 걍 생색용이다. 힙합 맛이 나는 10부작 생쇼다. 디스니 사이퍼니 힙합 첨가물들은 구색을 갖췄는데, 나의 혀를 때리는 건 논란과 사과다. 정작 래퍼들의 공연은 얼기설기 편집되고, 그나마 살아남은 마디들 위론 사이렌만 신나게 울려댄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래퍼들의 흥과 분노와 열정인데, 화면에 비치는 건 디스와 몸싸움과 스캔들이다. 그런 게 다 힙합이랜다. 뭐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겠으나, 어쩐지 속는 느낌이다. 이게 전부인가. 이게 과연 래퍼들이 보여줄 수 있고, 래퍼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전부인가.

이젠 쇼미더머니 4로부터 내가 뭘 기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두고 어느 비평가가 “역사의 사적 전유”라고 했다는데, 쇼미더머니 4는 “힙합의 사적 전유”쯤 되지 않을까. 이순신이란 이름을 빌려 김훈이 즤 하고 싶은 얘기 실컷 했던 것처럼, 힙합이란 장르를 빌려 제작진은 즤 채우고 싶은 욕망 -- 논란을 이용해 화제를 생산하고, 사람들이 자기 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게 만드는 것 -- 을 성실히 아주 잘 채우고 있다. 그 와중에 래퍼들의 자존은 싼값에 소모되고, 레전드의 명예조차 10초짜리 예고편과 손쉽게 교환된다(심판하러 왔다 심판당하고 간 피타입을 기억하는가). 힙합은 그저 쇼미더머니 4의 무드고, BGM이고, 바나나맛이다. 밑바닥까지 저어도 진짜 바나나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도당췌 나는 언제까지 빈 숟가락을 쳐돌려야 하는가. 일단 나의 인내심은 돈광판 경연 때까진 붙들어둘 작정이다. 힙합 무식자의 전두엽을 쩡 하고 울리는 -- 언프리티 랩스타의 “Real Me” 경연 때처럼 -- 진짜다운 진짜를 호구같이 기다려볼란다. 언제 한 번은 얻어걸리겠지. 그리고 블랙넛은 부디 가사를 잊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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